겸재정선 진경산수화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한글을 창제한 이는 세종대왕이고, 우리나라의 스타일의 그림을 발전시키고 대성 시킨분은 겸재정선이다. 그러한 화풍을 진경산수화라고 부르고 다른 장르에서도 가장 높은 완성도를 드러낸다. 어찌 보면 우리 미술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라고 할수 있다. 


겸재정선은 성은 정씨이고 본관은 전라도 광주로 이름은 선이다. 겸재는 그의 대표적인 호로 겸손하게 처신하는 대인군자다운 성품을 갖겠다는 바람에서 지은 것으로 주역에서 참고 하였다.


출생은 겸재 정선은 1676(숙종2) 음력 13일 한성부(지금의 서울) 북부 순화방 창의리 유란동(지금의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친 정시익과 어머니 밀양 박 씨 사이의 2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조부 때까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내는 등 관직을 한 명문 사대부였으나 증조부 이후 벼슬을 하지 못해 점차 집안이 쇠락하였다. 그러다가 1689(숙종15) 14세 때 부친이 52세로 세상을 떠나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금강전도 1734(59세)

정선, <금강전도>, 국보217, 130.8*94cm,

삼성미술관 리움


진경산수화는 실경산수, 사의산수화와 차별되는 개념이다. 실경이 외형에 중점을 두고 그린 것이라면, 사의산수화는 상상과 관념에, 화가의 화의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둔 것이라 본다. 반면 진경산수는 실경을 대상으로 해서 그리지만 작가 내면의 화의에 따라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한다는 점에서 보다 자유로운 예술 정신을 구현한 참 그림이라 하겠다.




이그림은 천원짜리 뒤에 있는 계상정거도라는 작품이다.

겸재정선의 내면의 생각에 따라 실경산수와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왜관수도원 구룡연이라는 자품

박연폭과 다른느낌을 준다.


진경산수화의 파급 못지않게 중요한 화풍의 대두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을 중심으로 한 풍속화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형세는 19세기 말기에 접어들면서 쇠퇴하게 되었는데 이는 19세기를 풍미하였던 추사 김정희의 남종화풍 문인화의 세가 드세어 그 맥을 잇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서양화법이 수용되어 음영법, 원근법이 그림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겸재정선미술관(강서구 가양동)에서 정보를 얻을수 있다.


Posted by exciting 나루닷컴